오정근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ojunggun@gmail.com
- 고려대 경제학과
-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 서울지방시대위원장·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 [오정근의 아주경제적 시선] 성찰은 하되 후퇴는 안된다 [오정근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4·10 총선 결과를 두고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성토 일색이다. 진 쪽은 할말이 없고 이긴 쪽은 모든 과실도 덮어지고 기고만장해지는 것이 한국의 4류 정치풍토인 듯하다. 국무총리와 대통령실 참모진 교체는 물론 대통령의 탈당과 여야영수회담에 이어 채상병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하는 발언들도 나오고 있다. 총선에서 12석을 얻어 원내 3당으로 자리매김한 조국혁신당은 15~16일 첫 당선자 워크숍 일정으로 평산마을을 찾아 문재인 전 대통령을 면담하고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후 권양숙 여사를 접견하고, 봉하마을 수련관에서 워크숍을 진행한 후 16일엔 안산으로 이동해 4·16 세월호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부활을 연상케 하는 듯한 모습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4·10 총선을 통해 당선된 300명 중 20명이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신분이라고 한다. 당장 민주당에서 이재명 대표는 대장동 사건 등 3개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총선 전날 법원 출석에 이어 16일에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배임·성남FC 뇌물'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했다. 그 외 당선자 10여 명이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단을 대기하고 있고 황운하 당선인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재판 중이다. 이런 당선자들이 과연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의 권리를 대리할 선량하고 유능한 대리자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4류 한국정치가 더욱 타락하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러한 피의사실에도 불구하고 총선에 출마해 당선된 이들은 적반하장격으로 윤정부를 검찰독재정권이라고 외치면서 검찰의 수사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검찰개혁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대의민주주의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뿐만아니라 공천과정에서 팬덤 지지자들의 여론조사 비중을 높여 비명횡사 공천을 해 당을 장악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한국에서 정당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인가 걱정도 하게 된다. 필자가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지역구 당협위원장들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유죄가 아니고 1심에 기소된 피의자를 일단 선임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느냐를 두고 논의가 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국회의원이란 국민의 권리를 대신 행사하는 선량하고 유능한 대리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의민주주의 정신이다. 문정부 5년간 계속되었던 경제 안보 등 각종 실정을 잊어버리기에는 시간이 2년여 밖에 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소득주도성장정책이라는 학계에서는 제대로 검증도 안된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해 급격한 최저임금인상 등으로 자영업 추락 등 경제를 참담하게 붕괴시키며 청년 노장년들의 일자리를 앗아갔다. 소주성이라는 이름하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근로시간 주 52시간으로의 단축, 비정규직 정규직화, 임금피크제 없는 정년 연장, 통상임금 포괄범위 확대, 성과급폐지와 연공급 재도입, 전 정부가 추진해 오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의 폐지 등 여러 친노동 정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앗아가고 대신 취업 근로자들의 이익을 증대시켰다는 의미에서 친노동이라기보다는 친노조정책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2011-17년 중 연평균 5.3% 상승해 오던 최저임금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2018년에는 16.4% 급등한 후 2019년 다시 10.9% 상승해 2년 연속 두 자릿수의 상승을 기록했었다. 이러한 최저임금의 급등으로 2017년 31만6000명 등 보통 3~40만 명 증가해 오던 취업자 증가수가 2018년 9만7000명으로 급감하는 고용참사가 초래되고 분배구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특히 자영업에 직격탄이 되었다. 서민들의 일자리가 날아가면서 하위 20% 가구의 무직가구 비율이 57%까지 급등했다. 하위 20% 가구의 57%가 일자리가 없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따라 하위 20% 가구는 2018년 1분기 중 월 수입이 47만3000원으로 2017년 4분기의 68만1000원에 비해 크게 감소하면서 정부지원금 등 외부보조금 59만7000원을 보태 근근이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충격을 주었다. 이처럼 하위 20% 가구의 평균소득이 급감하면서 소득분배구조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9년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실패한 28번의 부동산 정책으로 집값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해 내 집 마련 청년들을 절망하게 했다. 월간KB주택가격시계열 자료에 의하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부터 2018년 7월까지만 전국 아파트매매가격지수는 27.2% 올랐다. 서울은 52.0% 오르고 특히 세종시는 62.2%나 오른 것으로 조사되었다. 다시 2021년에는 20% 이상 상승했다. 부동산가격이 급등하자 공급은 늘리지 않고 강도 높은 억제대책들이 이어졌다. 투기과열지구 지정, 재건축안전진단 강화, DSR LTV DTI 강화, 공시지가 인상과 재산세 중과, 분양가상한제 등 부동산억제를 위해 가능한 정책들은 총망라하다시피 했다. 2020년에는 임대차3법도 도입되어 역전세난을 초래하기도 했다. 소주성으로 경제가 추락하자 ‘재정확대 선순환’ 이라는 재정주도성장 정책을 추진했다. 문 대통령의 재정주도성장 언급이 나오면 곧바로 정부여당은 부랴부랴 추경을 편성했다. 문 정부 5년 동안 재정지출을 확대한 나머지 2022년 말 국가채무는 천조원을 넘어섰다. 한마디로 한국의 재정상황은 국가부채는 날로 증가해 재정위기 가능성이 커지고 있고 미래세대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데도 이런 상황은 안중에도 없는 듯이 보였다. 탈원전정책의 무리한 추진으로 경제에 중요한 기반인 전력공급기반을 흔들고 농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보를 해체하거나 방류하고 자원빈국에서 개발해 오던 해외자원개발을 매각처리했다. 경제가 주저앉자 통계를 조작하는 일도 서슴지 않다가 장관 정책실장 등이 수사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9·19 군사합의로 안보기반을 크게 훼손하고 미국의 지속적인 요청에도 한미일 동맹체제보다는 종북친중의 굴욕적인 외교안보기조를 지속했다. 공정과 정의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조국 전 법무장관은 배우자와 더불어 입시 비리 등 각종 비리를 저질러 배우자는 유죄 판결이 내려지고 딸도 입학취소 처분을 받고 조국 본인도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이른바 ‘조국사태’라는 큰 파장을 낳으며 법무부 장관 임명 35일 만에 사퇴했다. 이로 인해 조국 수사를 총지휘한 윤석열 검찰총장은 정치 경력이 전무함에도 강력한 야권 대권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윤 총장의 직무를 정지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 등 갈등이 극에 달해 결국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퇴하고 말았다. 사퇴 후 윤석열은 국민의힘에 입당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고, 이후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이재명 후보를 0.7%의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조국과 추미애가 검찰총장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윤정부는 여소야대로 인해 야당의 입법독주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해 특히 경제를 살리지 못해 민생을 문정부의 도탄에서 구하지 못한 것이 가장 중요한 패인이었다. 4·10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시정되어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시장경제 활성화로 경제도 살리고 한미동맹 강화로 위기의 안보를 튼튼히 하기를 바랐으나 불행하게도 여당은 21대 총선의 103석에서 5석 늘어난 108석만 획득해 절반을 넘지 못했다. 엄밀히 말해 과반의 승리를 못했지만 낙동강벨트 한강벨트 서울강북 등에서의 선전을 고려하면 참패라는 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사가들의 윤 대통령 흔들기가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에 이어 이재명 정부가 탄생했으면 어찌 되었을까. 반자유민주주의 반시장경제 정책이 5년 문정부의 실정도 위와 같은데 10년간 계속되었으면 한국은 참담하게 추락했을지도 모른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인류의 번영을 가져왔음은 동유럽 구소련이 붕괴되고 중국과 베트남도 개혁개방 후 성장을 하고 있듯이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는 바이다. 한국도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건국과 시장경제에 기초를 둔 경제발전으로 선진국 문턱에 이르렀다. 외교안보면에서도 중국 러시아의 공산주의 재무장과 한층 강화되고 있는 북한의 도발이 자유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문정부는 한사코 한미일 안보동맹에 딴지를 걸면서 친중종북 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안보위기가 점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체제를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해 번영된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말살된 좌파 빈곤국으로 추락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윤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이번 총선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대통령실 참모들도 사의를 표명해 조만간 인적쇄신이 예고되고 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물러났다. 정부 여당은 이번 총선 패배의 원인을 깊이 분석하고 반성하고 성찰하고 쇄신해야 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번영을 가져왔다는 역사적 사실마저 후퇴하면 안된다. 이번 총선에서 이기지 못했다고 자유민주주의 회복, 시장경제 창달, 한미동맹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윤정부 정책의 근본기조마저 흔들린다면 이는 총선패배에 이어 대한민국을 추락시킬 궁극적인 2차 좌파 승리를 가져다 주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까 두렵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서울지방시대위원장·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2024-04-19 06:00:00
- [오정근의 아주경제적 시선] 급증하는 미국 부채 …고개드는 '애치슨 라인' 악몽 [오정근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아시아에서 미국의 방어선은 알류샨 열도에서 일본을 지나 류큐(오키나와)를 거쳐 필리핀으로 그어진다." 딘 애치슨 미국 국무장관은 1950년 1월 12일 백악관 인근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연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스탈린·마오쩌둥의 공산화 야욕에 맞선 미국의 필수 방어 지역에서 한국·대만을 뺀 것이다. 애치슨은 방어선 밖의 안보에 대해서는 "공격을 받으면 최초 책임은 그 국민에게 있다. 그다음은 유엔 헌장에 의거해 전 문명 세계의 책임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아시아에서 소련을 저지하는 데 주력했던 애치슨 장관은 “이 방어선 밖의 지역이 침략당했을 때 안보를 보장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필요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한반도를 미국의 극동 방어 대상으로 명시하지 않았던 당시 애치슨 장관 발언은 한반도에 유사 상황이 발생하면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주변국에 확산시켰다. 실제 5개월 후 북한이 한국을 침공해 6·25전쟁이 발발했다. 애치슨은 수십 년간 "북한의 남침에 '청신호'를 준 장본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김일성이 '미군 불개입'을 확신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미국 야당 의원들은 물론 6·25전쟁 영웅 리지웨이 사령관도 애치슨에게 책임을 물었다. 1952년 대선 유세 때는 아이젠하워가 애치슨을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금년 말 새로운 미국 대통령 후보로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월 10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방위비 분담금 증액에 미온적인 나토 회원국에 “러시아가 침공하도록 독려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뉴욕타임스(NYT)는 ‘애치슨 라인’과 같은 위험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NYT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을 ‘애치슨 라인’과 같은 격이라고 평가한 것은 미국이 굳이 동맹국에 주둔하는 미군 규모를 줄이거나 군사 지원을 중단하지 않아도 말 한마디로 동맹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미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옛 소련의 영토였던 폴란드 등 동유럽 주요국, 발트 3국 등을 언제든 침공할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영국 BBC 또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이 동맹을 지키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엄청난 오산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미국 정부의 판단은 우연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미국 국가부채의 GDP에 대한 비율이 코로나로 인해 2020년에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100%를 넘어서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이 더욱 악화될 전망이라는 점이다. 이로 인해 미국이 동맹국 방어를 위해 국방비를 충분히 사용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미국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시작된 20년 아프카니스탄 전쟁에서 승리를 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2021년 철군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도 깊이 개입하지 못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미국 정부의 급증한 부채가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예산통제법에 의해 국가부채의 GDP에 대한 비율이 100%를 넘어면 미국 양원의 인가를 받아야 지출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최근에도 재정지출을 하지 못하는 재정절벽 상태에 직면하기도 했다. 국가부채의 GDP에 대한 비율이 100%를 넘었던 것은 국방비 지출이 막대했던 2차 대전 직후였다. 아마도 애치슨 라인이 나오게 된 배경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6·25동란 전 1949년 6월 부랴부랴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미군 철수가 중요한 배경 중 하나가 되어 발생한 6·25동란 시에도 미군 단독이 아니라 유엔군이 지원했던 것이다. 미국은 오히려 한국전쟁 때 유엔군에 대한 군수물자 지원으로 국가부채 비율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번 트럼프의 발언은 우연히 나온 발언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재정 사정을 고려한 발언이므로 한국으로서도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한 실정으로 판단된다. <미국의 국가부채/GDP 비율> 2년 전 러시아가 침공할 하루 전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인 10명 중 7명은 ‘전쟁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고 한다. 서방의 러시아 전문가들 역시 “냉철한 푸틴은 자신의 몰락을 초래할 전쟁에 절대 뛰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러·우 전쟁은 벌써 3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이 벌어지리란 신호는 항상 있었지만, 우린 그걸 애써 무시했다”고 후회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러시아의 점령을 받아들이는 선에서 분단국가로 종전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수년 내 러시아와 나토 간에 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암울한 예상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핀란드는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수십 년간 유지해온 비동맹 원칙을 깨고 나토 가입 신청을 했고 지난해 4월 회원국이 됐다. 스웨덴은 이번 달 정식으로 32번째 회원국으로 합류했다. 헝가리 의회가 지난 2월 25일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안을 통과시키자 나토 동진에 대응해 러시아는 14년 전 폐지했던 동부 군관구를 부활시켰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대응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비용 부담 압박에 대응해 2030년까지 유럽산 무기 비중을 50%까지 채우는 것을 골자로 한 방위산업전략을 발표했다. 전략에 따르면 EU 회원국들은 2030년까지 국방 조달 예산의 최소 50%를 EU 내에서 지출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2035년에는 목표치가 60%로 확대된다. 또 전략에는 EU 회원국들이 2030년까지 신규 구매하는 군사장비의 40% 이상은 공동구매로 조달하고 EU 내 방산 거래 규모를 35%까지 확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방위산업전략의 목표는 EU 회원국들의 방산업체를 활성화해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무기 자급자족을 높이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 2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EU의 무기 수입 비중은 80%에 달했고 이 중 60% 이상을 미국이 차지했다. 이처럼 나토는 트럼프가 나토 방위비 문제를 거론하며 유럽이 자체적인 안보 강화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며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러·우 전쟁과 중동 전쟁까지 더해지면서 ‘민주’와 ‘독재’로 갈린 국제적 대립은 날이 갈수록 첨예해지는 상황이다. 이 두 개의 전쟁으로 ‘국제 정치’란 현상을 만드는 세계 각국의 역학 관계가 마치 도미노처럼 재편되고 있다. 유럽 정치권에선 "전쟁의 시대가 돌아왔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북유럽과 동유럽 발칸 국가들이 잇따라 나토에 손을 내밀고, 복지 예산까지 줄여가며 군비 증강에 나서는 것은 이런 ‘시대적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전쟁의 파장은 바다를 넘어 동북아로 들이닥치고 있다. 러시아·중국·이란·북한 간 밀착이 유럽·중동의 지정학적 위기를 한반도로 전이(轉移)하는 형국이다. 사실상 종신 집권을 하게 된 시진핑이 종신 집권 명분을 중국의 통일에서 찾기 위해 대만을 침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미국 학자들 사이에서 등장하고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두 체제)와 평화통일'을 내세웠다. 그러나 시진핑이 사실상 종신 집권에 나서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크게 세 가지 배경이 거론되고 있다. 첫째, 미·중 관계 악화다.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심화되면서 미국이 대만 카드를 흔들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에 자극을 받은 중국이 홍콩 사태에서 보인 것과 같이 무력 사용도 불사하는 강경 대응을 통해 대만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다. 둘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중국도 대만 침공을 못할 것 없다는 관측이다. 셋째는 시진핑의 집권 연장 야심이다. 헌법을 수정해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이지만 2027년 네 번째 연임을 위해선 명분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대만 통일이 매력적인 전략으로 대두되고 있다. “전쟁은 불가피하며 언제 얼마나 크게 싸울지가 문제”라는 견해도 등장하고 있다. 마잉주(馬英九) 전 대만 총통은 지난 6월 “전쟁을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그저 “언제 얼마나 크게 싸울지는 양측의 대처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양안 전쟁은 중국이 말하는 것처럼 중국 내부의 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한국도 자유롭지 않다. 이에 따라 지리적으로 우선 가까운 주한미군이 동원되고 그 공백을 북한이 노릴 수도 있어 대한민국이 가장 큰 피해 국가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르고 있다. 우리 운명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한국은 과연 이에 적절한 준비가 되어 있을까. ‘동맹에 기초해 실리를 추구한다’는 모호한 방법론이나 한반도와 그 주변국에 매몰된 근시안적 안보 전략으로 살길을 찾기엔 너무나 거칠고 복잡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한이 체결한 '9·19 군사합의'로 전방 방어시설 파괴, 대공 정찰 무력화, 서해·동해 북방한계선(北方限界線·Northern limit line) 무력화 등 약화된 대북 방어력을 재강화하는 일이 시급하다. 최근 발생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향토예비군과 상시 민방위 훈련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었다. 향토예비군 훈련도 강화하고 실효성 있는 상시 민방위 훈련도 강화하는 등 유비무환의 방위전략과 경제안보 핵심 산업 육성 전략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할 때다. 러·우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는 드론 등 첨단무기가 전쟁을 좌우하고 있다. 첨단 방위산업 육성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때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서울지방시대위원장·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2024-03-21 16:15:33
- [오정근의 아주경제적 시선] 1980 '서울의 봄' 이후 한국 경제가 호황 누린 까닭 [오정근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요즘 전두환 대통령의 ‘12·12 사태’를 그린 영화 ‘서울의 봄’이 인기인 듯하다. 일부 대학 게시판에는 "아직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며"를 제목으로 한 대자보도 붙었다고 한다. 대자보를 내건 학생은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며 분노와 슬픔, 답답함 등 여러 감정이 들었다고 보도되고 있다. 픽션을 기본으로 하는 영화는 픽션과 사실을 넘나들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과 많이 다를 수 있고 따라서 영화를 통해 역사를 평가하는 데는 작지 않은 위험성이 따를 수 있을 것이다. ‘12·12 사태’에 대한 객관적인 역사적 평가는 후일 역사가들이 잘 할 것이고 여기서는 ‘12·12 사태’로 집권하고 제5공화국을 연 전두환 대통령이 이루었던 경제 안정, 대한민국 경제사에서 처음으로 이룬 안정이므로 ‘대안정’이라고 이름 붙여도 무방하리라고 생각되는 경제적 성과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정치적 판단은 별개로 경제적 성과는 통계로 알 수 있기 때문에 후학들의 교훈을 위해서도 정리해 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필자가 굳이 경제 대안정이라고 명명한 데는 재임 기간 중 한국 경제 발전 사상 처음으로 고도 성장을 유지하면서도 경상수지 흑자와 물가 안정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이 경상수지 흑자를 처음으로 달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공장 하나 없고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공장 지을 설비 자재나 자원을 비싸게 사와서 물건을 만들어도 신생 개도국 상품을 제값에 사 줄 나라가 있을 리 없다. 1970년대 자주 보았던 풍경인 한국이 주로 아프리카 국가원수들을 자주 초빙했던 이유다. 할 수 없이 싸게 팔 수밖에 없고 결과는 경상수지나 무역수지 적자다. 한국은 경제 개발 시작 후 줄곧 적자를 기록해 왔고 그 결과 외채는 증가 일로였다. 그러한 적자 행진을 처음 흑자로 전환시킨 해가 1986년이다. 비로소 한국 제품이 제값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이때가 한국이 중진국 대열로 올라선 해로 본다. 물론 이때 저달러(엔고)·저금리·저유가라는 3저 효과도 컸지만 그러한 대외 환경을 잘 활용해서 경제 안정화 정책에 성공했기 때문에 한국 경제 발전 사상 처음으로 2%대 물가 상승률(1984~1986)과 10%대 성장률(1981~1987 10.2%)이라는 고성장·저물가에 1986년부터는 만성적인 적자였던 경상수지마저 흑자를 달성했던 것이다. 한국 경제 발전 사상 후학들이 배워야 할 만한 감히 경제 대안정이라고 명명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어떤 경제 안정화 정책을 추진해서 이처럼 성공을 거두었나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1980년대 경제 안정화 정책은 1960~1970년대 정부 주도의 성장 우선 정책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였다. 즉 1970년대 중반까지 상당한 효과를 보였던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 전략이 경제 규모 확대와 더불어 민간 부문의 사업영역이 점차 확대됨으로써 그 효과 면에서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1979년 세계 경기 침체와 제2차 석유파동 등 대외 경제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1970년대 중반 이후 추진된 중화학공업 육성책에 따른 설비투자 급증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는 가운데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경상수지가 악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처럼 정부 주도에 의한 경제 운영 방식이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고 그 유효성 면에서 한계를 보임에 따라 정부는 근본적으로 경제 운용 방향을 성장 우선 정책에서 안정 우선 정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1980년대 초반 국내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1979년 제2차 석유파동, 국내 정치 불안 및 중화학공업 육성책 여파 등으로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보인 데다 실업률과 물가 상승률이 크게 높아지고 경상수지 적자가 대폭 확대되는 등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특히 국제 원유 가격이 1979년 3월 배럴당 13.3달러에서 1980년 8월에는 30달러로 상승하면서 국내 물가가 급상승하고 경상수지 적자가 크게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경기 침체까지 겹쳐 수출마저 부진을 면치 못하였다. 이와 같은 1980년대 초의 열악한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책 당국은 중장기적 시계에서 일련의 경제 안정화 정책을 견실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함으로써 경제 안정의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그동안 지속되었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축소하기 위해 원화를 대폭 평가절하하는 동시에 복수통화바스켓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국내 통화가치를 현실화하고 환율의 가격 기능을 제고하였다. 이와 아울러 정부는 원화의 평가절하에 따른 수출 증대로 국내 경기가 다소 회복을 보이기 시작한 1982년부터 강도 높은 재정 지출의 긴축을 통해 재정수지의 건실화를 추진하였다. 특히 전년 예산을 기준으로 새해 예산을 편성하던 기존 방식에서 탈피하여 사업의 타당성을 기준으로 하는 제로베이스방식(zero-base -budgeting system)을 도입하여 이전까지 30%를 상회하던 재정지출증가율(통합재정 기준)을 10% 내외로 안정시키는 등 긴축기조를 계속 유지하였다. 통화정책에 있어서도 1980~1982년 중에 연평균 27%대에 달하던 총통화 증가율을 국내 경기 회복이 본격화된 1983년부터는 10%대로 하향 조정하여 1985년까지 지속시킴으로써 재정 긴축으로 조성된 물가 안정 기조를 더욱 확고하게 구축하였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책 당국에 의해 추진된 경제 안정화 정책은 1980년대 중반까지 물가 안정 기조하에서 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경상수지 적자 불균형이 꾸준히 개선되는 등 상당한 경제 성과를 가져왔다. 특히 물가 안정 기조의 정착은 실질실효환율을 절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수출의 가격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수출을 활성화하고 경상수지 적자 폭을 축소시키는 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마침내 1986년 사상 처음 경상수지 흑자를 달성하고 1988년에는 경상수지 흑자가 드디어 100억 달러를 돌파해 128억 달러에 이르고 올림픽도 치렀다. 100~200대를 횡보하던 주가종합지수가 1986년부터 상승하기 시작하여 1989년 3월에는 966까지 상승하고 대한민국에 마이카 붐도 일면서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였다. 장기간 급등한 주가가 조정을 거친 후 다시 상승을 시작해 드디어 1994년 9월 1000을 돌파해 한국 주식시장에 신기원을 달성했다. 경제만 보면 전두환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박정희 대통령의 ‘부국’에 이어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달성한 ‘흥국(興國)’ 대통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러한 경제 성과에 대해 국내 경제정책보다는 대외적 요인, 즉 3저 현상(저달러·저금리·저유가)에 크게 기인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양호한 대외적 경제 환경(3저 현상)을 최대한 이용하여 총수요관리정책으로서 통화, 재정 및 환율정책의 기조를 적절히 조화롭게 운용함으로써 경제의 안정 기반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5공화국 이후 정부들이 정치논리에 휘둘려 안정화 정책에 성공한 예가 드문 것을 고려하면 의의가 매우 큰 기간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5공화국 김재익 경제수석이다. 1960년 서울대 문리대학 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은행에 수석 합격해 사회에 진출했고, 1968~1973년 미국 하와이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위 취득 이후 귀국한 김재익은 경제기획원 기획국장으로 일했다. 전두환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경제과학분과 상임위원장이 되어 전두환에게 발탁되어 그에게 경제 과외도 했다. 김재익의 능력에 감탄한 전두환 대통령이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했던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는 말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김 수석이 독자적으로 경제 안정화 정책을 진두지휘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김재익 수석은 1983년 10월`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으로 44세라는 젊은 나이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 후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발생하면서 강성 노조가 등장하고 임금이 급등하고 안정화 정책도 흔들리면서 성장률은 하락하고 물가 상승률이 1987년 7.1%까지 올라가고 경상수지도 1990년에 다시 적자로 추락하면서 1997년 12월 외환위기를 맞게 된다. 이후 안타깝게도 한국 경제는 5공화국 시절 같은 고성장·저물가·경상수지 흑자를 동시에 달성하는 안정화 시기를 아직은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서울지방시대위원장·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2024-02-21 21:42:41
- [오정근의 아주경제적 시선] 시대 역행하는 징벌적 상속세 …이대로 둘건가 [오정근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서울지방시대위원장] 윤 대통령은 최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이어가면서 중요한 민생관련 어젠다를 제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상속세 개편 제의는 만시지탄의 감이 있는 매우 시급한 과제다. 윤 대통령은 “과도한 세제는 결국 중산층과 서민에게 피해를 준다.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 불이익이 있다고 해도 과감히 밀어붙이겠다”고 밝히면서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커졌다. 정치적 불이익이라는 점은 상속세 폐지 또는 완화를 주장하면 부자감세라는 포퓰리즘의 역풍을 맞을 우려도 있다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총선을 앞둔 시점에 상속세 개편 주장은 조심스러운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한국의 상속세가 너무 과도해 이제 많은 부작용들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더 이상 미루기 힘든 실정이다. 한국의 상속세율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악명이 높다. 과세 표준이 30억원을 넘을 경우 세율은 50%, 기업 경영권까지 물려받으면 10%p가 할증돼 60%로 높아진다. OECD 회원국 중 일본은 55%, 프랑스 45% 영국 미국은 40% 스페인 34% 아일랜드 33% 독일 벨기에는 30%다, 캐나다·호주 등 15개국은 상속세가 없고 상속세 원조국인 영국도 단계적 상속세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대주주라면 지분 상속 시 세금을 20% 더 매기는 제도는 한국이 유일하다. 가업 상속 공제 대상도 중소기업과 중견기업 일부로 한정돼 있어 대기업은 외국 기업에 비해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세계적 추세에도 맞지 않는 징벌적 상속세를 이대로 두고는 기업투자 활성화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다. 더구나 현행 상속세율은 2000년 세법 개정 이후 그대로다. 그동안 물가나 경제규모가 엄청나게 많이 커졌는데 경제 규모나 소득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과세구간은 그대로여서 세금부담만 증가하고 있다. 국세청의 ‘2023년 국세 통계 연보’에서는 2022년 피상속인 34만8519명이 남긴 재산 96조506억원 중 상속인들이 부담해야 할 결정세액은 19조2603억원인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2022년의 경우 삼성전자 오너 일가의 상속세 결정세액 12조원을 빼면 전체 규모는 작아진다. 문제는 이를 감안해도 상속세 규모가 매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 2조5197억원이던 상속세 결정세액은 △2019년 2조7709억원 △2020년 4조2294억원 △2021년 4조9131억원 등으로 불어났다. 2022년은 삼성의 수치를 제외해도 7조2000억원을 웃돈다. 2018년 대비 약 2.88배, 2001년과 비교할 경우 18배 많다. 상속세 실효세율도 20.05%를 기록해 처음으로 20%를 돌파했다. 일본(55%), 프랑스(45%), 미국·영국(40%) 등도 상속세율이 높은 편이지만 공제 혜택이 커 실제로 내는 상속세율은 한국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일본은 비상장 기업의 경우 세액 80%의 납부를 유예했다가 5년 뒤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면제해줘 실효세율은 11% 정도라는 분석이다. 프랑스의 가업 상속 실효세율도 각각 11.25% 정도고 미국에선 자녀가 부모로부터 2340만 달러(약 306억원)까지 세금 없이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의 상속세와 증여세 부담의 총조세 대비 비율도 선진국 가운데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국회예산정책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로 분석한 한국의 총조세 대비 상속·증여세 부담률은 2.4%(2021년 기준)로 나타났다. 이는 주요 7개국(G7) 평균(0.6%)에 비해 네 배나 많은 것이다. 10년 사이 증가폭도 한국이 두드러진다. 한국의 상속·증여세 부담률은 2011년 1.0%에서 1.4%포인트 증가했다. G7의 평균 증가폭 0.2%에 비해 일곱 배나 많다. 한국의 상속·증여세가 최근 들어 얼마나 빠르게 과중해졌는지 보여주는 통계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속·증여세 부담률로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국의 부담률은 0.7%로 프랑스(0.7%)와 함께 공동 1위로 나타났다. 이 경우에도 10년 사이 증가폭은 0.5%포인트로, 0.3%포인트인 프랑스보다 높았다. 한국의 상속세 부담이 이처럼 큰 것은 우선 세율이 높아서다. 상속세는 기업을 부도내거나 피인수합병 당하게 해 일자리를 잃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때 상속세율이 70%에 달했던 스웨덴도 2005년 상속세를 폐지했는데 제약회사 아스트라가 상속 과정에서 상속세를 내기 위해 주식을 팔면서 주가가 폭락해 영국의 제네카에 피인수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합병된 아스트라제네카가 바로 코로나백신으로 유명해진 회사다. 각종 반대기업 규제에다 높은 상속세 등 대기업으로 성장할 환경이 어려워 한국의 대기업 비중은 0.1%에 불과하고 중소기업의 비중은 99.9%에 달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중소기업 고용비중은 선진국의 거의 두 배 수준이며 대기업 고용비중은 10% 안팎으로 미국의 약 3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반면 청년들은 대기업의 양질 일자리를 갖고 싶어하기 때문에 청년층의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이 극심해 높은 청년실업의 원인이 되고 있다. 상속세율이 세계 최고인 한국의 기업들은 상속세로 더욱 골머리를 앓고 있다. 콘돔업체 유니더스, 밀폐용기업체 락앤락, 종자업체 농우바이오, 손톱깎이업체 쓰리세븐 등 해당 분야에서 국내외 1위를 달리던 업체들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경영권을 매각했다. CJ그룹은 회장 장남 등이 보유한 올리브영 지분의 일부를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상속 재원 마련 및 승계 자금으로 활용하기 위한 매각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신세계 이명희 회장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에게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을 일부 증여, 60% 증여세율을 적용받아 총 2962억원을 5년간 분할 납부하고 있다. 2022년에는 이건희 회장의 사망으로 약 12조원의 상속세가 부과되면서 한국의 높은 상속세가 국내외에서 큰 화제가 됐다. 결국 5년 동안 6회에 걸쳐 2조원씩 나눠 내기로 하고 삼성그룹 상속인들은 계열사 지분 매각, 보유주식 담보대출, 배당 등으로 상속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LG그룹 상속인들도 9000억원이 넘는 상속세를 주식담보대출 등을 통해 나눠 내고 있다. 아무리 재벌이라도 세계 최고의 한국 상속세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아예 최대주주 지위를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2017년 OCI 이우현 부회장은 부친인 이수영 회장 타계로 상속세 1900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지분 일부를 팔고 3대 주주로 내려앉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한국 유수 게임업체인 넥슨 김정주 회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6조원 안팎으로 추정되는 상속세를 마련할 길이 없어 자녀들이 주식으로 물납한 결과 기획재정부가 넥슨그룹의 지주회사인 NXC의 29.3%를 소유한 2대 주주에 올랐다는 보도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부가 물납으로 받은 상속세 주식은 매각에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실정이다. 물납주식이란 상속세 납부세액이 2000만원을 초과하는데 금융재산이 납부세액에 미달할 경우 주식으로 상속세를 내는 방식이다. 상속재산 중 유가증권 가액이 2분의 1을 초과해야 요건이 성립된다. 2013년 이후 비상장주식에 주로 적용되고 있다. 21일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경쟁입찰 시스템 온비드에 따르면, 입찰가 20억원 이상 물납주식(캠코 소유 유가증권)의 경우 지난해 256건 중 낙찰된 건이 불과 3건에 불과했다. 2022년의 경우 총 324건 중 낙찰된 건이 1건도 없었다. 사실상 20억원 이상 물납주식 대다수의 매각이 유찰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정부는 물납주식으로 받은 교학사 지분(11%), 라성건설 지분(12.23%) 등을 수백억원에 팔려고 내놨지만 수차례 유찰이 된 상황이다. 국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물납주식의 평균 유찰횟수는 2020년 기준 28회에 달한다. 유찰이 될수록 입찰가격은 떨어진다. 이 때문에 2020년 매각된 건에 한했을 때 물납가액은 420억원, 매각금액은 373억원에 불과했다. 이처럼 상속세를 내는 것보다 법인세를 더 내고, 일자리 특히 양질의 대기업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사회에 이익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OECD 38개 회원국 중 15개국이 상속세를 폐지했지만 한국은 요지부동이다. 지난해 삼성그룹의 천문학적인 상속세 파장으로 개편 논의가 있을 법도 했지만 워낙 기업 반대 정서가 강한 한국에서 정치권은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인 가운데 이번에 윤 대통령이 상속세 개편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는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대체하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재정부 2022년 9월 발주했던 ‘상속세 유산취득 과세체계 도입을 위한 법제화 방안 연구’ 용역이 다음 달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했다. 정부가 상속세 완화 방안 중 하나로 들여다보고 있는 유산취득세는 각자 상속받은 금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방법이다. 예컨대 현재는 100억원의 재산을 자녀 4명이 상속받는다면 100억원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긴 후 4명이 나눠 낸다. 하지만 유산취득세는 4명이 각각 물려받은 25억원을 기준으로 세금을 정한다. 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낮아지기 때문에 상속받은 이들이 내야 하는 세금도 줄어든다. 한국경제인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OECD 평균 수준인 30%로 인하하고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를 폐지하며 △과표 구간도 현행 5단계에서 3단계로 단순화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문제인 청년층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상속세를 전향적으로 전면 개편할 때다. 윤석열 대통령도 “과도한 상속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며 개편 의지를 밝혔다. 정부는 최고세율 조정, 최대주주 할증 폐지, 상속세 분납 확대 등 구체적인 상속세 개편안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 다만 상속세 부담 축소에 따라 줄어드는 세수를 보전하기 위한 보완책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도 ‘부자 감세’ 프레임에서 벗어나 경제 살리기 차원에서 상속세 수술 입법에 협조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서울지방시대위원장·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2024-01-25 15:21:03